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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부(望夫)의 언덕

시골편지 2025. 4. 26. 23:42

 

 

먼 옛날,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전쟁 때문에 집을 오래 비웠습니다. 여인은 매일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산이나 언덕에 올라가 돌아오는 길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고, 여인은 기다리다 지쳐 결국 그 자리에 굳어 바위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여인이 굳어서 된 바위를 ‘망부석’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이런 전설의 '망부석'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위가 여럿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평택의 망부석, 경주 남산의 망부석 등이 유명합니다.

 

‘절부암’이란 바위도 있습니다.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아내는 정절을 지키기로 결심합니다. 주변에서는 재혼을 권유하기도 하고, 다른 남자들이 유혹해도 죽은 남편에 대한 사랑을 굽히지 않습니다. 남편을 그리워하며 절개를 지키다 끝내 바위가 되었습니다. 혹은 바위 위에서 떨어져 생을 마쳤다는 전설을 담고 있는 바위가 ‘절부암’입니다.

 

이렇듯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기다림의 바위'가 있거나 '기다림의 언덕'이 있습니다.

 


 

점심때쯤이면 가끔 우리 집을 기웃거리시다, 마당 끝에 서서 건너편을 유심히 살피다 가시는 마을의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처음엔 동네 할머니께서 마실 나오셨다 힘들어 쉬시나 보다는 생각으로 그러려니 여겼는데, 몇 번 반복되길래 하루는 궁금해 가까이 다가가 말을 붙여보았습니다.

 

"할머니! 저 윗동네 사지죠? 지나시는 것 몇 번 뵈었는데… 차 한 잔 드릴까요?"

 

"마당에 웬 꽃들이 이렇게 많아요. 예쁘게 잘 가꾸어 놓고 사시네~"

 

나이가 있으셔 귀가 나빠 말을 잘 못 들으시는 건지, 남의 집 마당 구경 온 사람처럼 동문서답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여긴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

 

할머니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목만 길게 빼고 턱으로 강 건너편을 느릿느릿 가리킵니다.

 

"우리 집 양반이 논에 갔는데 밥때가 됐는데도 안 와! 걱정돼서 나왔어요."

 

윗동네 마을에 사시는 노인네 분입니다. 강 건너편에 붙이는 논이 있다고 합니다. 봄이 돼 바깥어른께서 농사 준비하러 거기까지 나갔다 합니다. 농사철이 됐기에 요즘 자주 나가게 된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점심때가 돼도 밥 먹으러 오지 않는 나이 든 남편이 걱정되고 궁금하기도 해 그쪽을 바라보기 위해 오신답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는 강 건너편 논이 잘 보인다고 했습니다. 너무 먼 거리라 아무리 봐도 나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내 눈에는 멀리 비닐하우스 사이로 논바닥만 언뜻 언뜻 보입니다.

 

"너무 멀어서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어디에 할아버지가 있어요?"

 

그러면서 열심히 할아보지 모습을 찾아보이지 않아 다시 물었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이세요? 어디있는데요?"

 

"저기 봐! 저기 있잖아! 경운기가 고장 났나? 왜 경운기에 매달려 있지? 이쪽으로 돌아보다 일하다 그러네!"

 

할머니는 내 물음에 혼잣말처럼 대답하며 시선은 강 건너편에 고정돼 있습니다.

 

할머니의 시선 방향을 따라 두리번거려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제법 푸르러진 강둑을 따라 피어나는 아지랑이와 그 너머의 논밭, 그리고 봄볕을 받아 하얗게 반짝이는 비닐하우스 등짝들 뿐이었습니다. 멀리 산들은 늦은 벚꽃이 흐드러지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혼자 지키는 언덕이 하나씩 있습니다. 할머니에게 우리 집 마당은 '기다림의 언덕'이고 '망부(望夫)의 언덕'이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연세가 드셔서 바깥출입이 힘들다고 하더니 근래 몇 년 마실 다니시는 걸 통 못 보았습니다. 망부석으로 굳으시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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